[김형배]의 한말글 일깨우기(17) : 안갚음/앙갚음
얼마 전 열 대여섯 살 된 아이가 여태까지 길러 준 할머니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. 사람들의 마음이 자꾸 메말라 가니 정말 놀라운 일들이 자주 일어나곤 합니다.
오늘은 ‘까마귀’를 생각해 보았습니다.
까마귀는 그 검은 깃털의 칙칙함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지만, 그 울음 소리도 사람의 귀에는 그렇게 좋게 들리지는 않는 모양입니다.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.
우리 조상들의 삶이 녹아 있는 ‘속담’에는 까마귀가 등장하는 것이 매우 많습니다. 그만큼 까마귀라는 새가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.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이 새를 ‘흉조’로 여겼고 속담에 등장하는 까마귀도 대부분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. 그런 속담 몇 개를 보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.
까마귀가 까치 집을 뺏는다.
까마귀가 알 물어다 감추듯 한다.
까마귀 게발 던지듯
까마귀 고기를 먹었나.
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.
까마귀 똥 헤치듯
까마귀 밥이 되다.
까마귀 열 두 소리에 하나도 좋지 않다.
까마귀 학이 되랴.
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 자리잡고 있는 까마귀도 ‘효(孝)’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.
즉, 까마귀는 새끼 때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고 자라지만, 어미가 늙어 기운이 없으면 그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합니다.
이것을 한자로는 ‘반포(反哺)’라 하고,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가리켜 반포지효(反哺之孝) 또는 반포보은(反哺報恩)이라고 합니다. 이것을 우리 토박이말로는 ‘안갚음’이라고 합니다. ‘안-’은 ‘밖’과 대립되는 말입니다. 따라서 읽을 때는 ‘안:갚음’으로 ‘안’을 길게 소리내야 합니다.
이와 같이 한낱 미물인 까마귀도 ‘안갚음’을 할 줄 알거늘 사람으로 나서 제 부모, 제 조상을 몰라본대서야 그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. 마치 원수에게 ‘앙갚음’을 하듯이 죽이기까지 하니 말입니다.
‘앙갚음’과 ‘안갚음’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그 뜻이 상반됩니다. ‘안갚음’을 해야 할 사람에게 ‘앙갚음’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겠습니다.
[김형배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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